[민우통신문 2025-1호] 광장은 안전했고, 안전하지 않았다.
글쓴이손어진 (광주녹색당 사무처장) 12·3 비상계엄이 터진 다음 날 아침부터 내란범이 탄핵됐던 4월 4일까지 주구장창 광주5·18민주광장에 살았다.깃발을 심하게 흔들어 내란성 근육통으로 정형외과에 다녀와 약을 먹었으며, 금남로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과 이마를 대고 삼보일배를, 4월 1일에는 헌재 앞 도로에서 광주여성민우회 감자님과 햇살님과 밤샘 농성을 하다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덮여있는 키세스를 보고 아직 살아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광장은 안전했고, 또 안전하지 않았다.광주에 이사 온 지 1달 만에 비상계엄이 터졌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웠던 윤석열은 결국 급발진을 하고 말았다.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자백에 이어, ‘나는 계몽되었습니다’는 내란 옹호자의 순도 백 퍼센트의 고해성사를 듣고 있자니, 어쩜 이들은 정말 이렇게 믿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진심으로 대한민국은 국가비상사태 상황이고, 이를 모르는 무지한 국민들을 계몽시켜야 한다고 믿었을 수 있다. 윤석열은 정말로 대한민국에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고 믿었고, 그래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2024년 2월 20일부터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공백인 상태를 내버려뒀다. 어리석은 윤석열, 여성가족부 장관이 없는 현재 상황이 국가 위기라고 했다면 탄핵을 면할 수 있었을까? 여성가족부 장관도 없는 사회, 대한민국은 여성들에게 진심 절체절명의 위기다. 무엇이 위기냐는 물음에 반사적으로 따라오는 통증이 가슴을 누른다. 그것은 10여 년 전 지도교수에게 당한 권력형 성폭력의 기억이기도 하고, 이러한 폭력이 10년이 지난 지금 광장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이다. 누군가는 가해자를 마주칠까 봐, 누군가는 광장의 무대에서 혹은 집회 참석자들이 무심코 던진 혐오와 차별의 말을 견디기가 힘들어 광장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응원봉을 들고나온 여성들은 ‘오빠’들을 응원하는 “여학생”들로 호명됐고, 파트너, 직장 상사, 친족, 불특정 남성으로부터 겪는 성폭력을 끊어내자 외치며 늘 광장에 나왔던 여성들은 느닷없이 등장한 “2~30대 여성들”로 칭송받았다. 물론 이번에 농민이 아닌 여성이 남태령에, 노동조합원이 아닌 여성이 ‘단결 투쟁’의 머리끈을 맸지만, 사실 여성 농민, 여성 노동자, 우리 여성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광장은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12월부터 매주 주말마다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지난 10년간 베를린에서, 파리에서 수백 번의 집회에 참석하다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광주에서 ‘내 사람들(?)’과 집회를 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감격을 느꼈다. 그동안 시위에 나갔어도 모어가 아닌 말로 진행되는 발언과 노래, 사람들이 들고 나온 피켓들 속에서 저 말이, 저 표현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로움과 답답함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이젠 다 알아듣겠잖아!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탄핵 광장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를 알아듣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었다. 응원봉을 들고 나온 10대를 호명하는 방식과 이들을 기특히(?) 여기는 태도, 어김없이 등장하는 동물 비하와 장애인 비하, 특정 외국인에 대한 혐오와 여성 혐오 표현, 윤석열을 사형시키자는 멘트는 도무지 호응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신군부의 총칼에 자식을 잃은 오월어머니들에게 윤석열을 어떻게 해야 하겠냐고 물으며 사형이란 답이 나오길 유도하는 사회자를 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동안 주변의 몇몇 이들이 왜 집회에 나오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5·18민주광장의 언어들을 견딘다고 했지만, 무언가 계속 영혼이 다치는 기분이었다. 점점 광장이 안전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함께 느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용기를 내 우리를 위축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매번 주최 측에 전달했다. 그리고 참석한 모두가 안전하게 느낄 수 있는 평등문화 약속문을 읽고,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고 건의했다. 다행히도 그렇게 5·18민주광장은 천천히 바뀌었다. 우리의 광장을 평등한 광장으로 만들어보려는 노력 속에서 총 20회가 넘는 총궐기대회, 주중 진행된 시민대회, 천막 농성, 삼보일배, 삭발과 단식, 서울 상경 투쟁, 동시다발적으로 있었던 광주 곳곳에서 진행됐던 시국선언과 기자회견들이 있었다. 그렇게 광주·전남 시도민은 이번에도 기어코 윤석열을 탄핵시켰다. 탄핵은 그 자체로 감격스러운 일이지만, 무엇보다 그 안에서 크고 작게 탄핵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우리의 투쟁이 있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21대 대선, 광장을 대변하는 자 누구?무엇보다도 광장이 필요했던 이유는, 날 살고 싶지 않게 만들었던 세상에 관해, 그럼에도 계속 살고 싶은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겨울과 봄, 추운 광장에서 동고동락하며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너른 동지애를 느꼈다. 그런데, 대선 정국이 되자 우리는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었다. 광장에서의 동지가 파란 옷을 입고 차별금지법을 영원히 미루는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본다. 광장에서 우리가 목이 터져라 외쳤던 함께 사는 세상, 차별 없는 세상이 ‘압도적인 대선 승리’라는 말로 수렴됐다. 진보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광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후보가 필요하지만, 자꾸 2022년의 악몽이 발목을 잡는다. 우리는 언제쯤 나를 닮은, 우리를 닮은 후보를 주저하지 않고, 담대하게 지지할 수 있을까.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이자 성소수자이자 장애인이자 노동자이자 세입자이자 빈민이자 이것저것 보장하라 외치는 진보 아무개가 대통령이 되는 날을 기대한다. 그러나저러나, 새로운 대통령은 일단 여성가족부 장관부터 임명하고, 여성가족부를 다시 움직이게 하라. 기억하시라. 우리는 지난 10년 안에 두 번이나 대통령을 탄핵시킨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