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통신문 2025-3호] 역사 속 여성들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예술계 모니터링: 연극 <1929>를 보고
역사 속 여성들은 무대 위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예술계 모니터링: 연극 <1929>를 보고 장장프리랜서 커뮤니티 매니저
필자는 4년 만에 광주 지역 연극 공연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광주 지역 공연을 봤던 것은 김원 작 <만선>이었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대사들을 들으며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이렇게 많은 출연진과 스태프들이 함께 만든 작품인데, 그중 누구도 이 대사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들릴지 질문하지 않았던 것일까. 연극 현장에서 작품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보통 연출이나 극단 대표다.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이 있더라도, 권한과 지위를 가진 그들이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한 작품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충분히 형성되기를 바라며 관객으로서 목소리를 낸다.공연예술은 관객—보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예술이다. 그렇기에 관객의 목소리는 단순한 감상평을 넘어, 예술계가 동시대와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연극 모니터링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 작품 속에서 여성이, 소수자가, 역사적 인물들이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함께 살피고, 무심코 지나쳤을 수 있는 지점들을 환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예술계가 더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대화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서양 역사학계에서는 초기 여성사 연구가 ‘보충사’와 ‘공헌사’의 형태를 띠었다고 지적한다. 보충사는 남성에 의해 규정된 가치체계에서 모범적인 여성의 역사이며, 공헌사는 역사 발전에 미친 여성의 기여에 초점을 둔 것으로, 이 역시 남성중심적 가치판단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1]. 여성을 ‘남성을 보조하는 존재’ 또는 ‘남성과 같은 일을 한 존재’로만 그려내는 방식은, 여성 자체의 경험과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는 역사 안에서 여학생들이 어떤 목소리를 냈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 연극 모니터링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영화계에서는 여성 재현의 문제를 점검하기 위해 ‘벡델 테스트’라는 간단한 도구를 사용해 왔다. 작품 속에 이름 있는 여성 캐릭터가 최소 두 명 이상 등장하는가? 그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그 대화의 주제가 남성이 아닌 다른 것인가? 이 세 가지 질문만으로도 놀랍게도 많은 영화가 탈락한다. 이는 우리가 얼마나 남성 중심의 서사에 익숙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었다.연극 무대에서는 ‘스핑크스 테스트[2]’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이 테스트는 주인공, 주도자, 스타, 힘이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에게 이 기준은 단순히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사의 주체로서 ‘존재’하는지를 질문한다.<1929>의 무대에서 출연진은 총 4명으로 배우들은 박준채, 박기옥, 이광춘, 경찰, 한국 학생, 일본 학생, 일본 순사 등 돌아가며 일인다역을 한다. 여성 배우1, 2의 대사의 비중으로만 보면 남성 배우3, 4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배우1의 주된 역할은 박준채의 입장에서 나주역 사건의 상황과 사건을 이야기하는 해설자다. 배우2는 박준채의 분리된 자아를 연기하는 비중이 크다. 여성 배우들의 몸을 통해 무대 위에 나타나는 주된 대사는 남성 주인공의 분열한 내면이고, 역사 속 여학생들 이야기는 엑스트라 비중으로 축소된다. 배우2가 이광춘의 이야기를 전하는 장면은 스쳐 지나가는 몇 마디에 불과하다.역사 내러티브는 “행위 주체의 주관—그들의 상황 해석, 의도, 행동, 결과—을 일정한 의미 체계로 구성[3]”해야 한다. 그러나 이 극에서 여학생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주체가 아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역 ‘댕기 머리 사건’은 박기옥, 이광춘, 암성금자, 윤오례 등 여학생들이 직접 겪은 사건이다. 극 <1929> 속에서 남학생 박준채의 분노와 결심 그리고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또 다른 자아와의 대립 중심으로 전개된다.나주역 사건 당사자 중 한 명인 윤오례는 일본인 남학생과 싸우다 머리를 심하게 잡아당기는 폭행을 당해 혹이 나고 피가 날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나주의원에서 치료받았고, 실제 가담자로 며칠간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당시 전남도지사도 인사차 방문할 정도로 명망 있는 집안에서 이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 가문의 체면을 위해 출옥시킨 후 기록을 삭제하고 서둘러 결혼시켰다고 한다. 평생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못하다가 60년이 지나서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손자들에게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윤오례는 이 트라우마로 평생 신경성 두통에 시달렸다.[4]이는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당시 ‘정숙한 여성’이라는 젠더 규범은 여학생들이 정치적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 자체를 용인하지 않았다. 일본인 남학생과 싸웠다는 것,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것은 '수치'로 간주했고, 그래서 많은 여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위가 역사에서 지워졌다.암성금자는 11월 3일 광주 학생 시위 현장에서 부상 남학생들을 구호하고 응원했으며, 이광춘은 백지동맹 당일 “최후까지 분투하여 목적을 관철하라”는 연설을 했다. 박기옥은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큰 인물이 된다 해도 다수 동무가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이라고 말하며 스스로 자퇴했다[5]. 나주역 사건은 여학생들이 ‘피해자’에서 ‘주체자’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러나 극 <1929>에서 기록된 역사 속에서 이러한 여학생들의 능동적 선택과 행위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다.여학생들의 백지동맹, 거리 시위 지원, 자퇴 등의 행위는 극 중에서 박준채의 선택과 행동을 보조하거나 반응하는 방식으로만 그려진다. 이는 초기 여성사 연구에서 지적되었던 ‘보충사’의 구조—“독립운동을 하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가계를 도맡아 운영하고 독립운동을 이을 자녀를 양육한다는 식의 역사 서술"[6]—와 유사하다. 배우2가 이광춘의 이야기를 전하기는 한다. 그러나 문제는 비중이다. 박준채의 내면세계를 그리는 데 극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쏟아지는 반면, 이광춘의 이야기는 몇 마디 대사로 압축되어 스쳐 지나간다.광주여고보의 백지동맹을 실제로 주도한 사람은 이광춘이었다. 1930년 1월 15일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女高普3年도 全部白紙 李光春孃의 演說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7]라고 보도 되었다. 이광춘은 시험 당일 교실에서 “최후까지 분투하여 목적을 관철하라”는 연설을 했고, 이에 광주여고보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백지 답안을 제출했다. 이는 나주역 사건에서 침묵해야 했던 여학생이, 두 달 후 언행을 삼가야 한다는 젠더 규범을 깨고 공개적으로 연설하고 집단행동을 조직한 역사적 순간이었다.박기옥의 자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공부를 잘해서 큰 인물이 된다 해도 다수 동무가 고생하는 생각을 하면”[7]이라는 말을 남기며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이는 식민지 교육 자체를 거부하는 행위로, ‘피해자’가 아닌 스스로 결심하고 행동한 ‘주체자’였다. 그러나 극 <1929>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사적 인물이 엑스트라 비중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단순한 비중 배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여성이 발휘했던 주체성과 용기를 주변화하고, 남성 중심 서사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현 방식은 관객들에게, 특히 교육 목적으로 이 연극을 관람하는 학생들에게 “광주학생독립운동은 박준채 같은 남학생들이 주도했고, 이광춘 같은 여학생들은 보조적 역할을 했다”는 왜곡된 역사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여성주의 관점에서 지역여성서술사 논문 저자 윤효정은 이를 “남학생들의 경험을 기준으로 여학생 비밀 독서회 광주여고보 독서회의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파악[7]”하려는 시각의 한계라고 지적한다. 남학생의 대중투쟁이라는 경험틀 안에서만 여학생들을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여학생들 자체의 경험과 주체성은 보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극 중 박준채는 고뇌하고, 갈등하고, 결단한다. 그의 내면세계는 세밀하게 그려지는 반면 이광춘, 박기옥은 엑스트라처럼 몇 마디 대사로 지나간다.역사 속 여학생들은 광주여고보 독서회라는 비밀독서회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이론을 공부하고, 백지동맹을 조직하고, 연설하고, 자퇴를 결단했다. 나주역에서 폭행을 당하고도 침묵하지 않았던 윤오례가 있었고, 시위 현장에 나간 암성금자가 있었다. “최후까지 분투하라”고 연설하며 백지동맹을 이끈 이광춘이 있었다. “다수 동무가 고생하는 생각”에 학교를 떠난 박기옥이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남학생들을 ‘보조’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정숙한 여성’이라는 젠더 규범을 깨고, 공개적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고, 집단행동을 조직하고, 자신의 미래를 결단한 주체들이었다. 연극 <1929>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라는 중요한 역사를 무대 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광춘이 “최후까지 분투하라”고 연설했던 그 순간이, 박준채의 내면을 그리는 비중에 비해 지나가는 장면 정도로만 처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오례는 가문의 체면 때문에 기록에서 지워졌고 60년간 침묵해야 했다. 이제는 역사적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창작자에게는 한 번 지워진 이름을 다시 호명할 책임과 기회가 있다. 역사극을 만든다는 것은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선택을 어떤 관점으로, 현재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특히 가부장제와 식민지 질서가 지워버린 여성들의 이름을 무대 위에 다시 세우는 것은, 역사극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무대 위에서 여성이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주체로 ‘존재’할 수 있도록 역사 속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때 비로소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무대 위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1] 윤효정, 「여성주의 관점의 지역여성사 서술을 위한 제언—광주학생운동 전후 광주 지역 여학생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남도문화연구』 제40집,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 2020, 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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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핑크스 테스트는 벡델 테스트를 계기로 영국의 스핑크스 씨어터 컴퍼니가 고안한 테스트다. 여성 인물과 여성 서사에 대한 질적 평가를 위한 문항이자, 극작가를 비롯한 연극 제작자들이 무대에서 젠더 불균형을 해결하는 데 참조할 수 있는 도구로써 만들어졌다. 주인공(Protagonist), 주도자(Driver), 스타(Star), 힘(Power) 총 4가지 항목으로 이루어졌으며, 세부 질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인공 (Protagonist) 1. 무대 중앙에 여성이 있는가? 2. 그 여성은 다른 여성들과 상호작용하는가?
주도자 (Driver) 1. 행동을 주도하는 여성이 있는가? 2. 그 여성은 수동적이기보단 능동적인가?
스타 (Star) 1. 그 캐릭터가 고정관념을 피하는가? 2. 그 캐릭터가 설득력이 있고 복합적인가?
힘 (Power) 1. 그 이야기가 필수적인가? 2. 그 이야기가 광범위한 청중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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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윤효정, 위의 논문, 3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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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향희, 「광주학생독립운동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역할」, 『재외한인연구』 제62호, 2023,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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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윤효정, 위의 논문, 310-312쪽 ↩
[6] 윤효정, 위의 논문, 292쪽. ↩
[7] 「女高普3年도 全部白紙 李光春孃의 演說 눈물을 흘리며 말하얏다」, 『조선일보』, 1930년 1월 15일, 석간 2면. ↩
[8] 「自習이라도 하여서 공부 朴李兩處女談」, 『조선일보』, 1930년 2월 26일, 석간 2면. ↩
[9] 윤효정, 앞의 논문, 289쪽. ↩※ 이 글은 예술로-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여성민우회와 예술인들이 공동 기획하여 마련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