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
[공동논평] ‘절차 이행’과 ‘지도부 사퇴’가 끝이 아니다. 조국혁신당은 조직 내 성폭력을 제대로 직면하고 조직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라 -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을 목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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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작성일
- 202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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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절차 이행’과 ‘지도부 사퇴’가 끝이 아니다. 조국혁신당은 조직 내 성폭력을 제대로 직면하고 조직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라 -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을 목도하며 -
지난 9월 4일 조국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은 본인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이야기하고, 당내 또 다른 성폭력 사건과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말하며, 사건 해결 과정의 문제를 짚었다. 강 전 대변인은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당을 지키기 위해 피해자들을 향해 ‘2차 피해’를 일삼는 모습을 지켜보며, 정치를 기반으로 다른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여성 동료들이 결국 당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참담함과 참회의 마음을 전했다. 강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이후 당 지도부는 기자회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팩트체크용 입장문을 바로 내고, 9월 5일 지도부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기자회견에서 “당은 절차대로 모든 것을 이행했다”는 말과 “조국 전 대표는 책임을 지기에 무관한 위치에 있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비판 여론이 멈추지 않자 9월 7일 당 지도부는 책임을 지겠다며 총 사퇴 의사를 밝히고 당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했다. 지난 4월 이후부터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기를 바라온 피해자의 기대는 6개월 동안 지연되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배은망덕하다”, “당을 흔든다” 등의 조롱과 공격을 감수하였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강행하고 나서야 나흘만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지도부의 사퇴와 “가슴 아팠다. 재발 대책 마련 힘 보탤 것”이라는 조국 전 대표의 입장이 나왔다. 공동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연에 지연을 거듭하며 외면하다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급히 움직이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1. ‘성비위’가 아니라 성폭력 사건이다.
사건의 명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히 성폭력이 있었음에도 조직의 공식적인 징계 결정이나 법적 판단이 나지 않았다며 성폭력이라 명명하지 않는 상황을 종종 목도하곤 한다. “성희롱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조국혁신당 전 이규원 사무부총장의 발언은 당이 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성희롱은 성폭력이다. 조국혁신당 입장대로라면 본 사건은 이미 당 내에서도 성폭력으로 인정하고 가해자 징계 조치를 이행한 사건이다. 형법상 범죄 여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거니와, 강간이나 추행으로 인한 피해와 언어적 성폭력에 의한 피해의 위계를 설정하며 피해를 축소하고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미치는 발언은 그 자체로 성인지 감수성의 부족을 드러낸다. 무엇이 성폭력으로 명명되어야 하는지 충분한 조사와 논의를 통해 판단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언론보도를 포함하여 많은 공동체에서 어떻게 명명할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법조문에 해당하는 것인지 아닌지 따지기에 급급할 뿐이다. 조국혁신당 역시 그랬다.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구체적인 맥락을 짚고, 해당 사건이 피해자에게 미친 영향력을 파악하고, 공동체에서 ‘그 사건’을 무엇이라고 명명할지 함께 합의 할 수 있어야 사건의 실질적 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문제 해결 방향을 명확하게 그릴 수 있다.
2. ‘절차 이행’, ‘지도부 사퇴’가 문제 해결의 전부가 될 수 없다.
조국혁신당은 근본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라.
강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이후 조국혁신당은 ‘절차대로 이행했다’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일각에서는 “절차대로 했는데 뭘 더 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하였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절차에 기반하여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절차 이행을 ‘어떻게’ 하였는지가 중요하다. 조국혁신당은 가해자에 대한 제명, 당직 정지 등 절차적 조치를 근거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 징계는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사건 이후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을 보장하는 과정이 조직적 차원에서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절차는 이행되었지만 피해자가 계속 ‘2차 피해’를 입었다면 제대로 된 해결이라고 볼 수 있을까? 피해자가 여전히 보호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며 탈당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절차적 조치와 피해자 회복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피해자 회복이 연동되지 않는 절차적 징계는 무슨 의미인가? 절차의 각 과정마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피해자의 회복과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였는가?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마음을 담은 절차를 이행하려고 노력하였는가? 조국혁신당은 무엇을 놓쳤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해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신생 정당이라 해결 과정이 미흡했다는 변명을 중단해야 한다. 당 지도부 사퇴로 책임을 다했다는 착각을 멈춰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피해자의 회복과 성폭력이 만연한 당의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서 성평등 가치 표명을 실질화하고, 피해자와 조력자의 안전과 회복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이행하고, 근본적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당 지도부 사퇴가 문제 해결의 끝이 될 수 없다.
3.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당을 망치는 것도, 뒤흔드는 것도 아니다.
평등한 관계 속에서 정치를 꿈꾸고 실행하기 위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절절함이다.
우리는 2018년, 정치인이라는 권력을 기반으로 성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해온 안희정에게 ‘당신의 행위는 성폭력이다’라고 말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故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과 故장제원 의원 성폭력 사건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피해자의 용기를 기억한다. 정치를 꿈꾸고 희망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고, 성폭력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던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들 또한 기억한다. 성폭력 문제제기 이후 피해자들은 “당을 망치려고 한다”, “후보자를, 시장님을, 위원님을 위협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듣는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진영논리에 피해자를 가두고 비난하고 공격한다. 이번 사건도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교육연수원장은 피해자를 언급하며 “그게 죽고 살 일인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기울어진 성별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공동체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것은 ‘죽고 살기를 각오’하는 것이다. 성폭력을 알렸다는 이유로 ‘2차 피해’에 노출되고 고용상의 불이익을 경험하다 피해자들은 결국 조직을 떠난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을 무수히 보아왔다. 직장을 잃는 것은 꿈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 박탈되는 것으로서 생사의 기로에 놓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곁의 여성 동료들이 떠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동체가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피해를 말한다. 변화를 위한 피해자의 절규에 그동안 정치는, 공동체는 어떻게 응답해 왔는가?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정치 진영은 그동안의 행보를 성찰해야 한다. 성찰 없이는 조국혁신당이 그토록 말하는 정치의 혁신도, 민주주의의 실현도 불가능하다. 공동체의 제대로 된 반성과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죽기 살기로’ 문제제기하고 싸운 피해자와 피해자 곁의 조력자에게 온 마음을 다해 지지와 연대를 표한다.
4. 핵심은 성평등한 조직문화다.
성평등 없이 민주주의의 완성은 없다.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 중에 피해자들이 당을 떠난다는 것은 정치 조직에서 성평등이 부재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성인지 감수성의 부재로 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공동체의 미래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직 내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선언은 힘이 없을뿐더러 유해하다. 공동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동안 공동체의 문화가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값이다. 사건 이후의 처리 과정 또한 그 조직의 성인지 감수성과 문화의 수준을 드러낸다. 조국혁신당은 당의 현실을 직시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로 거듭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한다. 조직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 평등한 조직문화에 대한 구성원들 공동의 감수성 제고, 조직문화는 모두의 몫이라는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각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사법개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당의 주요한 가치와 목표로 내세웠다. 개혁과 지속가능성의 원칙은 조직문화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사건을 어떻게 처리했는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안전하고, 존중받았는가’라는 질문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조국혁신당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는 이 사건이 또 하나의 ‘침묵’으로 덮이지 않고, 모든 공동체가 조직문화를 점검하고 새로고침하는 계기가 되기를 촉구한다. 마지막으로 조국혁신당 성폭력 사건을 목도하며 타 정당 역시 ‘2차 피해’를 일삼는 이들에 대해 꼬리 자르기 조치나, 성폭력 사건을 진영 비난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한 정치의 장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기를 엄중히 전한다. 그것이 국민의 삶을 말하는 정치이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임을 천명한다.
2025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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