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통신문 2025-2호] 되돌아 오는 여성 혐오, 여성 서사의 후퇴, 여성의 방은 어디인가
되돌아 오는 여성 혐오, 여성 서사의 후퇴, 여성의 방은 어디인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임인자독립기획자독립서점 '소년의서' 대표
"하나의 유령 - 여성혐오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에 떠돌고 있다.”-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 차용 2016년 ‘오타쿠_내_성폭력’ 트위터 해시태그로 시작된 성폭력 가해 고발의 물결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계에서 시작된 “000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그리고 2018년 연극계를 중심으로 대중화된 미투운동의 전개 이후 문화예술 및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난 여성 서사의 변화에 관심을 두고 지켜봐 왔다. 그동안 성차별 의식, 성별 고정관념, 잘못된 성 통념,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성추행과 성폭력의 낭만화, 권위주의적 문화 등과 결합하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젠더 기반 폭력(gender based violence)이 일어났는데, 문화예술 역시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젠더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문화와 사회가 구성한 지식과 권력관계를 의미화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문화예술 및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성불평등과 남성 중심 문화로 인한 왜곡된 관행 등을 살피고, 문화예술 콘텐츠를 성인지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문화는 언어나 상징을 통해 오랜 시간 동안 습득되고 훈련된 생활양식이다. 문화를 생산하는 미디어 속 재현된 여성 이미지가 어떻게 성차별주의와 성역할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성인지 관점에서 문화예술과 대중문화를 다시 분석해 보니, 고착화된 젠더 불평등 속 여성은 수동적인 위치에 고정화되고, 전통적인 여성의 성역할을 강조하며, 남성의 시선에서 성적 대상화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게 된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보다 주체적인 여성 서사의 시도도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또한 미투운동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발표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성평등, 성차별 현황을 확인하고 있다. 몇 가지 지표를 소개하자면, ‘여성이 처한 문제와 상황을 잘 파악하여 성차별적 현실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지, ‘성차별적 관념과 규범에 도전하고, 자기의 신념과 철학에 따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지, ‘편협하고 전통적인 시각과 고정관념에 탈피하여 다양한 배경의 여성·남성의 모습과 역할을 묘사’하는지, ‘성차별적 젠더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촉구 및 구조적 대안을 제시’하는지 등 현실반영성, 주체성, 다양성, 대안성 등 성평등 지수를 살펴보고 ‘여성성/남성성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하여 고정관념을 고착하는 내용을 보이고’ 있는지, ‘성별에 따라 특정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지, ‘남성 중심적 성 규범(강간 통념 등)을 강화하는 내용을 무분별하게 보여’주고 있는지, ‘여성을 남성의 단순 보조나 부속물로 취급하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내용을 묘사’하지 않는지,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지, ‘성적괴롭힘, 젠더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사소하게 묘사하여 심각성을 축소’하는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로맨스로 묘사’하는지, ‘성차별적 언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 등 젠더(성별) 고정관념 강화, 성적 대상화, 성적 괴롭힘·젠더폭력 정당화, 외모에 대한 평가, 여성 혐오적 언어 표현, 차별 조장 등을 통해 문화예술 및 대중문화에서 재/생산하고 있는 콘텐츠들을 성인지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노력하고 있다.그러한 면에서 이번에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오징어 게임> 시리즈는 ‘거액의 상금을 향한 혈투를 그린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 사상 최고 인기 콘텐츠 중 하나가 됐다. 오징어 게임은 90개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고, 한국 사회의 복잡성에 대한 통찰력을 외부 세계에 알린 성공작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폭력과 여성 혐오 등으로 시청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꼈다. <오징어 게임> 1편에서도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오징어 게임>에선 참가자들이 게임 미션을 달성하는 데 여성이 적합한지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 한국의 성차별 문화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투자은행 종사자인 조상우(박해수 분)는 여성 참가자들이 팀 미션에 참여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리고 이 드라마 속 여성의 역할 묘사 방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특히 한미녀(김주령 분)가 장덕수(허성태 분)와 성관계를 맺고 팀에 합류하는 부분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감독은 <오징어 게임> 공개 직후부터 있었던 논란에 대해“여성혐오 의도 없었다.”라고 단언한다. 여성의 생존과 저항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하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여성의 연대를 꿈꾸는 목소리였다.하지만, 돌아온 <오징어 게임> 2편은 여성 혐오에 방점을 찍는다. <오징어 게임>에서의 거의 마지막에 다다른 여성은 어머니로 표상되었고,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게임으로 진입하기 직전 여성 캐릭터들이 모두 사망했다. 여성들이 죽어갈 때 거기엔 서사마저 부여되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남성 대표성, 여성의 배제, 그리고 여성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캐릭터에 아무런 서사도 부여되지 않은 생존게임, 이유 없는 죽음과 폭력은 이것이 한국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지만, 나는 퇴행이라고 생각했다. 잔혹함 말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오징어 게임>을 보며, 그동안 대중문화와 문화예술에서 여성의 주체성, 여성의 고유성, 여성의 강인함 등 다양한 여성서사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이 역행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아대학교 권명아 교수는 논문『오징어 게임』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에서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매체가 취하고 있는 매체 전략을 ‘초국가적인 반페미니즘 흐름’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초기 넷플릭스에서 취했던 페미니즘 컨텐츠 제작의 흐름이 반페미니즘으로 역전되고 있는 현상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문화예술과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성인지 감수성 문제를 좀 더 적극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성평등한 환경 만들기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1929년 출간한 책 <자기만의 방>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 방, 우리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여성의 방이 여전히 필요하다.“그리하여 아주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가 생겨납니다. 상상에 있어서 여성은 더없이 중요한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하찮은 존재입니다. 시에서는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여성의 존재가 고루 퍼져 있지만, 역사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이 글은 예술로-예술인 파견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여성민우회와 예술인들이 공동 기획하여 마련되었습니다.